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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ging knowledge and people through AI — for learning to live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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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Hangil Kim
© 2026 Hangil Kim
AI & Society·2026년 2월 11일

더 AI를 활용하는게 우리와 사회를 위한거라고?

지금과 같은 시대에 AI에 관한 소식을 지속적으로 접하고 자신의 일상과 업무를 바꾸고자 노력하는건 분명 개인 수준에서는 분명한 우월전략이다.

하지만 FOMO를 부추겨 강의를 팔아먹는걸 넘어 당신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게 우리 사회, 나아가서는 인류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이라 떠드는 자들은 최소 나이브, 대부분 위선이며, 최대 사기다.

기술의 민주화일까. 무정부 시대의 개막일까(OpenClaw 현상으로 바라보는 미래)
기술의 민주화일까. 무정부 시대의 개막일까(OpenClaw 현상으로 바라보는 미래)
AI & Society·6 min·2026년 2월 5일

기술의 민주화일까. 무정부 시대의 개막일까(OpenClaw 현상으로 바라보는 미래)

OpenClaw가 보여주는 미래는 기술의 민주화가 아니라 규제 불가능한 에이전트 복잡계의 시작이다. 속도와 FOMO의 시대에 비가역적 오염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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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 Society·2026년 1월 29일

멈추고 생각하는 시간이 더 중요해진다

멈추고 생각하는 시간이 귀중해지는 시대다.

쇼츠와 끝없는 피드. 별로 생각치 않고 물어도 알아서 의도까지 파악해서 답해주는 AI가 존재하는 시대는 생각하지 않음이 자연스럽다. 생각치 않아도 당장은 유사한 결과를 얻기에 스스로도 이를 인지하긴 어렵다. 그래서 의도적 멈춤. 그 공백 사이에서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더 가치 있어진다.

그래서 책읽기가 필요하다. 능동적으로 읽어내려가야하고, 연상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이라면 좋은 책읽기와 좋지 못한 책읽기도 나눠진다. 속독이나 줄거리 파악을 위한 책읽기는 사실 AI에게 요약해줘 하는 것과 크게 다를바 없다. 읽다가도 문장을 음미하며 생각을 덧붙이는 읽기가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글쓰기도 필요하다. 능동적으로 구상하고 써내려가고 다시 일고 수정해야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데 AI 도움을 받는건 마냥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먼저 제시하고 관련된 주변 지식을 탐색하고 사유를 확장하는데 쓴다면 좋은 사용일테고, AI 의견을 묻고 그 의견대로 따라가는 빈도가 늘어난다면 나쁜 사용일테다. 물론 글쓰기가 어려운것 처럼 AI를 이렇게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대화나 토론도 필요하다. 상대방이 말할 때, 의견을 듣고 잠시 기다리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와의 채팅은 이런면에서 '대화'이기 쉽지 않다.

이런 기회는 가면갈수록 의도적으로 잘 디자인된 환경에서만 경험 가능하다. AI 시대에 이제 가정환경에 따른 격차는 다른 곳이 아닌 이 부분에서 나지 않을까.

대학이 (변화한다면) 여전히 존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점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수개월동안 멈추고 생각하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경험을 돈과 교환하는 것. 물론 이 경험이 당장 좋은 직업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차피 지금의 직업양성소로의 가치는 곧 무너져내릴테니 기존의 가치로 돌아가는게 대학의 살길이 아닐까.

요즘 모임? 공명의 관계. 하지만 안전하지 않은.
요즘 모임? 공명의 관계. 하지만 안전하지 않은.
Life·4 min·2026년 1월 19일

요즘 모임? 공명의 관계. 하지만 안전하지 않은.

현대의 모임들은 느슨하지만 강렬한 공명의 관계다. 하지만 사회적 안전망이 되지는 못한다. 교회는 조건 없이 관계가 유지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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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6년 1월 9일

지금의 주도성이 비전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꿈이 뭐냐고, 비전이 뭐냐고.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가 아닐까.

꿈과 비전이 분명해야 현재의 삶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오히려 반대다. 비전은 시선을 멀리 띄워 보낸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의미를 두는 동안, 현재는 준비의 과정으로 밀려난다. 반면 주도성은 시선을 거두어 지금으로 되돌린다. 무엇을 꿈꾸느냐보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게 한다. 비전은 사실 이러한 지금의 삶이 축적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그 무언가가 아닐까. 마치 한나아렌트가 인간을 추상적인 규정이나 선안에서 시작하지 말고, 현상 세계에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내가 구체적 관계를 맺고 나라는 존재에 영향을 끼치는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자고 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의 현실적 선택이기도 하다. 불과 몇 달 후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서, 먼 미래의 목표를 선명하게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보다 지금의 나와 주위를 보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이 나의 선택이고 무엇이 떠밀려간 결과일까. 이를 분간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처럼 수많은 미디어와 알고리즘, 주위 사람들의 참견, 비교 속에서는 더더욱. 애초에 완벽한 주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우리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우리의 욕망과 기준조차 언제나 타인의 말과 시선 속에서 형성된다.

하지만 주도적 삶이 제약을 제거하고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 이르려는 시도는 아니다. 오히려 제약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때로는 받아들이는 일이다. 제약에 끌려가듯 반응하기 보다, 그 안에서 나름의 고민과 선택을 하는 것, 무엇을 감수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 태도, 그것이 주도성에 가깝다. 혹 그 결과가 겉으로 다른 행동으로 드러나지 못했을지라도, 그 흔적은 어딘가에는 남을테다. 같은 지점에 놓인 화살표라 해도, 그 방향과 크기는 모두 다르듯이.

이런 면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제약이면서 동시에 이 흔적이 살아남은 곳일지도.

AI & Society·2026년 1월 7일

인문학의 쓸모: AI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일부) 인문이나 기술비평 쪽에서 AI를 논할 때 안타까운 점 한 가지는 AI가 하지 못하는 부분에 초점을 둔다는 점이다.

문제는 AI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 논의를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이렇게 쉽게 일반화해서 얘기하기에) 틀린 주장이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곧 그리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

반면 이 논의를 하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이를 듣고 수용하는 일반 대중의 인식 변화 속도는 현저히 느리다.

결국 지금 맞는 이야기든 아니든 한계에 초점을 둔 논의가 형성한 현실인식과 실제의 갭은 간극이 벌어질 확률이 아주 높다. 이는 타인 의견에 대한 무시로 이어지고, 서로간의 대화를 단절시킨다.

차라리 AI의 기술적 한계나 인간의 상대적 우월성 얘기는 조금 접어두고,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AI가 과연 어디까지 발전해서 어떤 영향력까지 행사할 수 있을지 생각을 확장하는데. 하지만 일부 권력자들에 의한 불균등한 발전으로 소외받을 영역이 어디일지 논하고 반대 방향으로 무게추를 옮길 수 있도록 하는게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훨씬 긍정적이지 않을까.

AI & Society·2026년 1월 7일

AI가 가져올 변화는 마태효과가 아니라 양극화다. 현재의 격차가 미래의 격차를 보장하지 않으며, 시니어 유리론은 일시적 현상에 기반한 착각일 수 있다.

"AI가 가져올 변화는 마태효과라기 보다는 양극화가 더 적절한 표현이다.

지금보다 훨씬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나 현재의 격차가 앞으로의 격차를 유지시켜주진 못한다. 어떤 사람은 AI로 인해 이전의 불리함을 극복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AI로 인해 오히려 퇴보할 것이다.

그렇다고 누가 더 뛰어난 사람이라기 보다는 장강명 작가가 먼저온 미래에서 얘기하듯이 새로운 환경에 누가 더 적응하기 쉬웠는지의 차이랄까.

비슷한 관점에서 요즘 계속 언급되는 주니어 vs 시니어 구도에서 시니어가 유리하다는 관점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니어 채용의 급격한 감소는 채용의 권한을 시니어가 쥐고 있다는 점, 채용을 하지 않는 행위가 해고하는 행위보다 훨씬 용이하다는 점 등이 맞물려 돌아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변화하는것보다는 AI 발전속도가 훨씬 빠르기에 AI+시니어보다는 AI+(일부)주니어가 더 큰 격차를 불러올 것 같다.

그래서 여기에 굳이 성경 말씀을 인용하자면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라는 마태복음 20:16이 더 적절할 듯 하다."

Life·2026년 1월 7일

후광효과 경계하기

인생을 살아오며 가장 도움이 됐던 지식 중 하나는 후광 효과 (Halo Effect)란 인지편향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사실 별건 아닌데 한 면이 대단하다고, 다른 면도 대단할 것이라 생각하면 안되고, 지금 대단하다고 앞으로도 계속 대단할거라 속단하면 안된다라는 너무 당연한 얘기다. 반대로 좋지 않아 보이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모든 부분이 좋지 않을거란 인식도 경계해야 한다(Horn effect).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말투가 어눌하면 내용을 듣기도 전에 별로라고 생각한다거나 교수나 판사면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맞는 말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성취는 존경하되, 맹신하거나 우상화하지 않아야 한다.

이게 가장 심하게 적용되는 대상이 정치나 종교 지도자다. 이를 조금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다면 교회나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리나, 세습, 성추행 문제로 부터 자신을, 그리고 우리를 조금은 더 지킬 수 있을테다. 그리고 존경하던 인물의 추악한 면을 발견했을 때의 실망감으로부터도 조금은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수십억을 요구하는 본인의 행동에 조금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는, 억울함만 가득한 유명 개신교 목사의 발언을 보며 다른 크리스챤들이 대신 너무 많은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끼지 않기를... 애초이 그 분이 설교나 책을 잘 써서 유명했던거지 인성이 남달라서 유명했던건 아니지 않았던가.